짜증
20대 때, 짜증이 많았습니다. 물론, 친구들에게 짜증을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제 마음이 못마땅한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가족에게는 짜증을 잘 냈던 것 같습니다. 짜증이 많다는 것은 곧 불평 불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생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싫은 일들, 부정적인 일들이 못마땅하여 불평 불만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짜증이 많지 않습니다. 짜증이 나더라도 가족들에게 표현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역 가운데, 불만이 생기면, 가까운 부교역자들에게 심정을 토로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 마저도 결국 웃어넘기고 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했을까요? 왜 젊었을 때는 짜증이 많고, 지금은 그 짜증을 다른 이에게 푸는 습관이 사라졌을까요? 그 이유는 제 마음의 그릇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은혜 체험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 가운데 부어져, 마음이 따뜻해진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마음이 차분해진 것입니다. 짜증이 많은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기질적인 요인입니다.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면, 부정적인 상황에 반응하는 속도가 빠릅니다. 그리고 그 일을 급히 처리하려다 보면, 마음이 급해서 짜증을 내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도 기질적인 요인인데, 마음이 소심하여서, 부정적인 일이 발생하면, 감당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은 짜증을 다른 모습으로 표출합니다. 말을 아예 하지 않는다 거나 잠시 숨어 있다 거나, 날카로운 몇 마디 말을 던집니다. 세번째 이유는 경험적인 요인입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과거에 겪은 부정적인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일이 아직 일어나지도 심각해지지도 않았는데,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당연히 인상이 구겨지고, 부정적인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천적 혹은 후천적 요인으로 사람과 상황을 품는, 즉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그릇이 좁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까다로운 사람, 짜증 많은 사람은 마음이 좁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짜증이 성격 탓, 상황 탓으로 돌리기에는 그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짜증내면, 관계가 끊어집니다. 다른 가족들에게 짜증을 잘 내면, 가족이 결코 화목해질 수 없습니다. 특히, 이런 짜증 섞인 말을 어린 자녀들 앞에서 자주하면, 자녀들은 알 수 없는 불안함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자녀들이 소심해집니다. 담대함을 갖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언제나 자비롭고, 여유롭고, 관대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가 자동차 사고를 내도 “보험비가 얼만데”라며, 짜증내서는 해서는 안 됩니다. “괜찮니, 어디 아픈데 없니? 큰 사고 아니라서 너무 다행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자녀가 비싼 물건을 샀다고 낭비했다며 짜증내서도 안 됩니다. “아빠, 엄마가 사주려고 했는데, 네가 돈 모아서 사버렸구나 대견하구나 다음에 아빠가 더 좋은 사줄 게”라고 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는 짜증이 아니라, 너그러움이 필요합니다. 짜증은 그저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한 자기기분을 푸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떤 현자가 늘 불평 불만으로 가득한 제자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물잔에 소금을 가득 부어 마셔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물은 몹시 짰고, 제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너무 짜다고 짜증을 냈습니다. 그리고 현자는 다시 제자를 불러, 호수에 데리고 가더니, 호수에 소금을 한가득 붓고, 제자에게 호수 물을 마셔보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그냥 물 맛인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현자가 “세상에 소금 같이 짠, 답답한 일들이 많단다 그러나, 그 일을 담는 네 마음이 그릇이 크면, 짜게 느껴지지 않는단다 네 마음의 그릇을 키우거라.” 성경은 우리의 마음, 심령, 영혼을 그릇이라고 표현하고, “이 보배”, 즉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은혜를 우리의 마음의 그릇에 담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을 때를 묘사한 말씀입니다. 즉, 예수 믿으면, 은혜를 받았으면, 그 심령이 변화되어, 사람과 상황을 잘 포용하고 이해할 능력이 생기나는 의미를 포함하는 말씀이 분명합니다.
저는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면, 마음의 그릇의 크기가 커진다”라고 감히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분명히 마음 속, 기질과 성격은 타고 나는 것이어서 바뀌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그릇의 크기는 제한적일지라도 담는 용량이 커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아니, 용량이 커졌다는 것은 곧 그릇이 커졌다는 의미가 아니냐?”며,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우리의 마음의 그릇은 제한적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의 그릇 가운데 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씻어주시거나 제거해 주셔서, 다른 좋은 생각을 담을 여유가 생기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우리 마음 가운데 짜증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넓은 마음, 좋은 것만 담는 그릇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 받아야 마음이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자신의 마음의 용량이 커지도록 “하나님, 제 마음을 다루어 주십시오”라며, 자신의 마음을 놓고 기도할 줄 아는 지혜로운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짜증
20대 때, 짜증이 많았습니다. 물론, 친구들에게 짜증을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제 마음이 못마땅한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가족에게는 짜증을 잘 냈던 것 같습니다. 짜증이 많다는 것은 곧 불평 불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생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싫은 일들, 부정적인 일들이 못마땅하여 불평 불만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짜증이 많지 않습니다. 짜증이 나더라도 가족들에게 표현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역 가운데, 불만이 생기면, 가까운 부교역자들에게 심정을 토로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 마저도 결국 웃어넘기고 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했을까요? 왜 젊었을 때는 짜증이 많고, 지금은 그 짜증을 다른 이에게 푸는 습관이 사라졌을까요? 그 이유는 제 마음의 그릇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은혜 체험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 가운데 부어져, 마음이 따뜻해진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마음이 차분해진 것입니다. 짜증이 많은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기질적인 요인입니다.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면, 부정적인 상황에 반응하는 속도가 빠릅니다. 그리고 그 일을 급히 처리하려다 보면, 마음이 급해서 짜증을 내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도 기질적인 요인인데, 마음이 소심하여서, 부정적인 일이 발생하면, 감당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은 짜증을 다른 모습으로 표출합니다. 말을 아예 하지 않는다 거나 잠시 숨어 있다 거나, 날카로운 몇 마디 말을 던집니다. 세번째 이유는 경험적인 요인입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과거에 겪은 부정적인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일이 아직 일어나지도 심각해지지도 않았는데,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당연히 인상이 구겨지고, 부정적인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천적 혹은 후천적 요인으로 사람과 상황을 품는, 즉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그릇이 좁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까다로운 사람, 짜증 많은 사람은 마음이 좁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짜증이 성격 탓, 상황 탓으로 돌리기에는 그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짜증내면, 관계가 끊어집니다. 다른 가족들에게 짜증을 잘 내면, 가족이 결코 화목해질 수 없습니다. 특히, 이런 짜증 섞인 말을 어린 자녀들 앞에서 자주하면, 자녀들은 알 수 없는 불안함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자녀들이 소심해집니다. 담대함을 갖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언제나 자비롭고, 여유롭고, 관대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가 자동차 사고를 내도 “보험비가 얼만데”라며, 짜증내서는 해서는 안 됩니다. “괜찮니, 어디 아픈데 없니? 큰 사고 아니라서 너무 다행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자녀가 비싼 물건을 샀다고 낭비했다며 짜증내서도 안 됩니다. “아빠, 엄마가 사주려고 했는데, 네가 돈 모아서 사버렸구나 대견하구나 다음에 아빠가 더 좋은 사줄 게”라고 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는 짜증이 아니라, 너그러움이 필요합니다. 짜증은 그저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한 자기기분을 푸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떤 현자가 늘 불평 불만으로 가득한 제자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물잔에 소금을 가득 부어 마셔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물은 몹시 짰고, 제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너무 짜다고 짜증을 냈습니다. 그리고 현자는 다시 제자를 불러, 호수에 데리고 가더니, 호수에 소금을 한가득 붓고, 제자에게 호수 물을 마셔보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그냥 물 맛인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현자가 “세상에 소금 같이 짠, 답답한 일들이 많단다 그러나, 그 일을 담는 네 마음이 그릇이 크면, 짜게 느껴지지 않는단다 네 마음의 그릇을 키우거라.” 성경은 우리의 마음, 심령, 영혼을 그릇이라고 표현하고, “이 보배”, 즉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은혜를 우리의 마음의 그릇에 담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을 때를 묘사한 말씀입니다. 즉, 예수 믿으면, 은혜를 받았으면, 그 심령이 변화되어, 사람과 상황을 잘 포용하고 이해할 능력이 생기나는 의미를 포함하는 말씀이 분명합니다.
저는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면, 마음의 그릇의 크기가 커진다”라고 감히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분명히 마음 속, 기질과 성격은 타고 나는 것이어서 바뀌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그릇의 크기는 제한적일지라도 담는 용량이 커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아니, 용량이 커졌다는 것은 곧 그릇이 커졌다는 의미가 아니냐?”며,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우리의 마음의 그릇은 제한적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의 그릇 가운데 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씻어주시거나 제거해 주셔서, 다른 좋은 생각을 담을 여유가 생기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우리 마음 가운데 짜증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넓은 마음, 좋은 것만 담는 그릇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 받아야 마음이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자신의 마음의 용량이 커지도록 “하나님, 제 마음을 다루어 주십시오”라며, 자신의 마음을 놓고 기도할 줄 아는 지혜로운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