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영광스런 죽음

영광스런 죽음


“연명치료 거부”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연명치료 거부는 환자가 인위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결정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결정은 주로 말기 환자나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된 중증 환자가 내리며, 이를 통해 환자는 자연스러운 임종을 맞이하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연명치료는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CPR), 투석, 영양 공급 등의 다양한 방법이 포함될 수 있는데, 이러한 치료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완치가 불가한 질병 때문에 길어질 고통을 짊어지고 싶지 않아 하는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환자가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법적 대리인이나 가족이 대신 결정하는 경우가 있고, 환자가

미리 사전 연명 의료계획서를 작성하여, 병원이나 의료진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조치일 수도 있지만, 의학적으로 더 이상 치료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있어서 연명치료는 환자에게 고통만 더 가중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의식이 있는 환자들은 산소호흡기를 달고 호흡하거나, 몸에 여러 장치를 달고 연명하는 것을 너무나 답답해하고 고통스럽게 느낀다고 합니다. 의식이 없어 보이는 환자들조차도 사실은 그러한 고통을 그대로 느낀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입니다.


지난 5월 아버님의 소천 소식을 듣고 급하게 한국을 들어갔습니다. 어머니와 형님은 연명치료를 하지 않기로 사인을 하여서, 예상보다 일찍 임종하셨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장례를 치르면서, 오히려 큰 고통 없이 일찍 소천하신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양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부터,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 나는 준비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것은 올 초 선교 후 잠시 한국을 들렸을 때, 평소에는 겸연쩍어 말씀드리지 못했던 “아버지, 잘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덕분에 형님과 저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고맙고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할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사역이 바빠 곧장 미국으로 귀국하면서, 죽음에 대해 많은 고민과 묵상을 하였습니다. 제 자신에게 “과연, 죽음과 부활을 믿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는가? 그들은 정말 죽음을 또 다른 천국의 삶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가? 죽음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천국으로 가는 새로운 시작으로 여기는가?”라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작금의 현실은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현대의 많은 크리스천들은 죽음을 성경적인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죽음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죽어서 천국가기 보다 이 세상에 더 오래 살고 싶어한다”였습니다. 이런 결론을 내리고 나니, 구원과 천국 영생 부활에 관한 말씀을 전해온 설교자의 입장에서 잠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교 중에 “지금 당장이라도 갈수만 있다면, 천국에 가고 싶은 분, 한 번 손들어 보시기 바랍니다”라는 질문을 성도님들께 드렸을 때, 10명중 1-2명 정도 밖에 손들지 않으셨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때, 성도들은 어떠했는가를 떠올렸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바로 오늘 주님이 재림하실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에 주님이 오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고통 많고, 핍박이 있는 삶보다 영원한 안식이 있는 천국을 사모했습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질병과 사고 재해, 핍박과 순교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가족들을 보고 심히 슬퍼 우는 성도들에게 “너무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장례를 당한 유가족들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했으니, 지금으로 치면 얼마나 무례한 말입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죽음 앞에 슬퍼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소 긴 내용이지만,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 새번역 성경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잠든 사람의 문제를 모르고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소망을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예수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이미 잠든 사람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말로 서로 위로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모두 마지막 날에 예수님의 공중재림이 있을 것이며, 이미 죽은 사람, 그리고 산 사람 순서로 부활, 즉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휴거 (Rapture 들림)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고, 믿는 자는 이러한 약속을 서로 일깨우고 격려하여, 죽음 앞에서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고, 천국과 영생을 소망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


몇 주 전 저는 특별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올 초에 등록하여, 심방하였던 새가족이셨던 권사님 자녀들이 임종예배를 원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권사님께 지병이 있으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 60되신 권사님이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부랴부랴 저녁 늦게 UCI ICU에 갔습니다. 당연히, 권사님은 의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족들에게 위로를 드릴 말씀을 준비하여, 병실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웬 걸, 권사님은 두 눈을 부릅뜨고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오랜 병으로 몸은 지나칠 정도로 야위었지만, 권사님의 눈은 초롱 초롱 빛나고 있었습니다. 물론, 산소 마스크가 없이는 호흡하실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권사님께, “권사님, 깨어 계셨군요. 권사님이 절 부르신 거에요?”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알고 보니, 권사님께서 자신은 주님 만나러 갈 준비가 되었으니, 이제 산소 마스크를 떼어 다라고 자녀에게 부탁하시면서, 담임 목사님을 불러 예배를 드려 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어찌 이런 귀한 믿음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권사님께 물었습니다. “권사님, 두렵지 않으세요? 권사님, 마음에 풀지 못한 상처나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하나님께 무언가 털어 놓지 못한 죄가 있으신가요?” 권사님은 고개를 저으시며, “없다”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부목사님은 찬송가를 여러 곡 불러드렸고, 권사님은 지긋이 눈을 감으시며, 마음으로 찬양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3-18절 말씀을 전하며, 이미 장성한 두 자녀에게 이만한 믿음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고 칭찬하며, 자녀들에게 어머니의 믿음과 천국 소망을 잊지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권사님에게 산소 마크스를 떼는 순간 권사님은 분명히 천군 천사를 보게 될 것이고, 주님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권사님 우리 곧 다시 만나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권사님께서 아들에게 글자를 쓰고 싶다고 표현을 하여, 준비된 화이트 보드와 마커로 글을 쓰시는데, “목사님, 제 장례 때 권면의 말씀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장례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권사님 당연한 것을 부탁까지 하십니까?”라고 웃으며, “그럼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해드렸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병실에는 아들 내외와 두 손자 손녀, 딸과 예비 사위가 있었는데, 딸과 예비사위가 제게 “지금 이자리에서 어머니 살아 계실 때, 결혼 주례를 해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목회자가 임종예배 때, 그 자리에서 결혼 주례를 부탁 받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당시 저는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이내 기쁜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전하고 두 사람을 남편과 아내로 맺어주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권사님은 숨쉬기 힘든 고통 가운데서도 웃고 계셨습니다. “나는 이제 일을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다”는 표정이셨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제 마음에 모든 크리스천이 정말 구원과 천국과 영생을 분명히 믿고 있다면, 권사님과 같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디어에서는 연일 의료과학이 발달하여 사람의 평균 수명이 당연히 100살, 심지어 200살까지 살 수 있다는 뉘앙스로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실현 가능성은 있지만, 가까운 시일내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소설에 불과합니다. 그런 일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러한 특권은 부유한 극소수의 사람들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크리스천들이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고, 그러기를 심히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크리스천들이 만나면, 주로 나누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가 건강입니다. 건강한 운동, 건강한 음식, 건강 비법입니다. 그리고 가장 기피하고 두려워하는 주제가 치매, 노화, 죽음입니다. 이 세가지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성경적으로 죽음은 또 다른 영원한 삶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치유가 불가한 질병, 그리고 죽음은 하나님께서 “내 자녀야 이제 내 곁에 올 때가 되었다 준비하거라”는 하나님의 통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몇 주 전 저는 “예언”이라는 주제의 칼럼에서 예언의 은사가 있으신 장로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권사님의 임종을 미리 알려주셨으나,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언 한마디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간증 한마디 못하시고, 시금치를 사러 시장에 다녀오시다가 소천하셨다”는 간증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생의 마지막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죽음은 하나님과 자녀들 가족들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보기에 영광스러워야 합니다. 요즘 믿지 않는 분들 중에 지각이 있으신 분들 사이에는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도록 돕는 세미나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믿지 않는 분들 중에 죽음을 잘 준비하는 지각 있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때야 할까요? 우리는 천국과 영생이 있음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곳이 이곳보다 더 나은 곳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죽음 이후에 있을 일들에 대한 확신과 담대함이 있으십니까? 죽음을 잘 준비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죽는 순간이 영광스러웠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감사한인교회

예수 믿고 변화되어 세상을 축복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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