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예언을 믿으십니까? 크리스천들 사이에도 “지금도 예언이 있다” 또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지금은 예언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 근거한 설교가 예언을 대체했다” 등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은 지금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성령의 은사의 일부가 어느 순간에 사라졌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언이 흔치 않고, 또 정확하고 분명한 예언이 드물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없다고 부정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교회역사를 보면, 12사도 이후에 그들의 직계 제자들, 일명 속사도로 불렸던 사역자들, 또 훨씬 이후에도 예언의 은사와 같은 신비로운 사역을 했던 교부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감사한인교회는 성령의 역사와 은사를 믿고 사모하는 오순절 교단인 Assemblies of God(아주사 대부흥 운동 때에 탄생한 100년이 넘은 미국 교단)에 속해 있는 교단입니다. 아시다시피, 감사한인교회 주일 예배에는 치유를 간구하는 기도 시간이 있고 종종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곤 합니다.
지금도 선교지에서는 수많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치유의 기적, 치유의 은사는 있는데, 방언도 없고, 예언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으로도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지금도 치유의 기적을 경험했다고 보고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넘치도록 많습니다. 흔히, 예언이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논리는 “지금은 성경이 있기 때문에 예언이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의료기술이 하나님의 기적보다 훨씬 많은 병자들을 고치는 첨단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데, 왜 치유의 기적은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요? 흥미롭게도, 치유의 기적은 의료시설이 매우 열악하고,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면, 회복이 어려운 가난한 선교지에서 더 자주 일어납니다. 어쩌면, 오늘날 의료기술이 고도로 발전된 나라에서 치유의 기적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기도하는 자나, 기도를 받는 자나 사실은 하나님 보다 병원과 의사 의료기술 의료보험을 더 마음 깊이 신뢰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하면, 오직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하나님만 바라는 간절함과 온전함의 결핍이 그 원인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의료기술, 의료시술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굳이 기적을 베푸실 이유가 하나님께도 없으신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치유기도를 받기 원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병원예약, 수술예약을 먼저 받고 오십니다. 그래서, 사실상 기도는 수술이 잘 되게 해달라는 기도로 마무리가 됩니다.
예언의 은사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예언, 예언의 은사에 관한 수많은 논란과 논쟁이 존재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예언이 예언답지 않다 진짜 예언 같은 예언, 정확한 예언이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언에 대한 부정적인 현실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성경적인 진실이 있습니다. 그렇게 예언자, 선지자가 많았던 구약시대 때에도 진정한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에 비해 극소수였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선지자 엘리야는 예비 선지 훈련생들을 양육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주에 대부분은 선지자적인 은사가 강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듣고서도 그 예언을 이해하지 못해, 엘리야가 승천하고 난 뒤에 그의 시체를 찾으러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은사를 사모하고 엘리야의 정신을 이어받은 수제자가 있었으니, 바로 엘리사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사실상 진정한 선지자를 한 사람 밖에는 키워내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평신도 또는 사역자 할 것 없이 성령의 은사가 임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부분적으로 기도하다가 신비한 경험을 합니다. 그 가운데는 환상이나 꿈을 경험하기도 하고, 입에서 마치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것처럼, 말씀을 선포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자신에게 예언의 은사가 강하게 임하여, 은사 사역을 해야 한다고 믿어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그냥 다 말해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도 보면,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습니다. 마음이 겸손하지 못한 사람이 이런 일을 경험하면, 자신이 예언한 것이 맞았던 부분에만 자랑스러워 합니다. 틀린 부분에 대해서 생각지 않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틀린 것도 맞다고 믿거나, 합리화합니다. 예를 들어, 몇 해 전에 한반도에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많은 중보기도자들이 기도해서 전쟁을 막은 것이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중보기도로 막을 전쟁이면, 전쟁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전쟁을 대비하라”고 예언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즉, 그 은사 사역자는 예언을 하는 그 순간에는 전쟁이 일어난다고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예언은 틀린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전쟁의 위험성은 전쟁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위험을 놓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사실도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예언을 통해 안다고 말하니, 학식을 갖춘 사람들은 예언을 불신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성으로 판단해도 맞고 틀림이 50대 50 반반이고, 예언도 50대 50 맞을 확률이 반반이니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언에 있어서 희망고문도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예언 중에 두리뭉실한 예언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다른 이를 세우는 케어의 사명이 있다는 둥, 앞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둥, 그런데 다른 이를 사랑으로 케어하는 것은 성령을 받은 크리스천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사명입니다. 어느 특정인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끝 모를 고난 중에 있는 사람에게 계속 “잘 될 거야 괜찮아질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성경적으로 예언은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미래의 일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예언한 일이 그대로 성취되는 예언입니다. 예를 들어, 초대교회 때에 아가보가 전세계에 큰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실제로 기근이 일어났습니다. 즉 이러한 예언은 미래에 일어날 분명한 사실을 말함으로써, 그 일을 대비하고 준비하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 예언을 듣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기근을 준비하여 화를 면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종류의 예언은 미래에 있을 어려움이나 지금의 영적인 현실을 전하거나 하나님의 현재의 그 사람을 향한 뜻을 전달하는 메시지적 예언이 있습니다. 아가보는 함께 예언을 하는 딸들과 더불어 바울을 만났을 때, 사도 바울에게 로마로 올라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로마에 올라가면, 큰 핍박과 환난이 있을 것이니, 피해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사실, 이 무렵 아가보와 그의 딸들만 그러한 예언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외에 다른 많은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똑 같은 예언을 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뜻은 사도 바울을 더 오래 사역하게 하실 계획이 있으셨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사도 바울의 전도 열심과 순교 각오를 말리실 수는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와 함께 간혹 기도 받기 위해 참석했던 기도원이 있었습니다. 기도원 원장님은 장로님이셨는데, 큰 교회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예언과 치유의 은사가 탁월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어떤 권사님에게 몇 날 몇일에 천국가게 될 것이니, 자녀들에게 신앙적인 유언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은 너무 건강한 분이셨고, 그냥 “일찍 천국가면 좋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들은 예언을 알리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 시금치 반찬을 해먹고 싶으셔서, 시장에서 시금치를 사서 집으로 귀가 하시다가 집 앞에서 풀썩 주저 앉으신 채, 그 영혼이 천국으로 떠나가셨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장로님께서 탄식하시며, 이 소식을 교회 성도님들께 전하고 자녀들에게 전하며, 신앙의 유언을 남겼으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온 교인이 천국을 소망하게 되셨을 것인데, 너무나 안타깝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그저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저와 어머니께서 실제로 보고 겪은 사건입니다.
예언은 하나님과 자주 그리고 깊이 교제하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에게 정확하게 임합니다. 마치, 초대교회 때에 많은 제자들이 광야에서 기도한 것처럼, 사도 바울도 아라비아 사막에서 주님과 직접적으로 교통하기 위해 수년을 머물렀던 것처럼, 뿐만 아니라,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 광야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를 받기 위해서 특별한 기도생활을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마음이 순수했고, 하나님만 바라고, 기도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육신의 정욕을 부인하고 오로지 하나님만 찾는 하나님과 시간만 보내는 크리스천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실제로 은사 사역을 하는 분들 중에 하루 몇 시간씩 기도하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사역하시는 분들이 더 세상의 것을 사랑하고,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미디어를 더 좋아하고, 그러한 복잡한 마음이 성령이 주시는 생각인지, 자신의 생각인지 마귀가 주는 생각인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에 은사 사역자들 중에 탁월한 사역을 하신 분들은 대부분 산에서 홀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기도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셀폰으로 유튜브나 자주 시청하는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티비는 말할 것도 없고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며 기도하는 분들이셨습니다. 결국, 오늘날 예언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나지 못하는 이유는 치유의 은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영혼이 수많은 미디어의 영향으로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에, 또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사역 가운데, 자신의 예언을 들은 사람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 때문에 올바른 예언사역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혹여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가운데, 은사 사역을 사모하신다면, 지금 당장 미디어를 끊어야 하고, 마음 속에 음란과 욕심 시기 질투와 같은 습관적인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더 깊이 하나님과 교제해야 하며, 자신에게 임한 예언을 내 생각인지,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마귀가 미혹한 것인지 늘 의심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저는 이 타락하고 악한 시대에 진정한 은사를 경험하기 어려운 때에, 분명한 은사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누군가 치유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분을 앞세워 병원 심방을 다니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언의 은사가 강하게 임하면, 당장 어려움에 처한 분들에게 얼마나 확실한 교훈과 권면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바로 선호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결국 모두 죽습니다. 미래의 일도 미래가 현재가 되는 순간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내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가 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아파서 죽어도 하늘의 영광에 참예할 것이고, 우리의 미래는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는 영원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를 사모하시 되, 말씀을 더욱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언
예언을 믿으십니까? 크리스천들 사이에도 “지금도 예언이 있다” 또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지금은 예언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 근거한 설교가 예언을 대체했다” 등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은 지금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성령의 은사의 일부가 어느 순간에 사라졌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언이 흔치 않고, 또 정확하고 분명한 예언이 드물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없다고 부정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교회역사를 보면, 12사도 이후에 그들의 직계 제자들, 일명 속사도로 불렸던 사역자들, 또 훨씬 이후에도 예언의 은사와 같은 신비로운 사역을 했던 교부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감사한인교회는 성령의 역사와 은사를 믿고 사모하는 오순절 교단인 Assemblies of God(아주사 대부흥 운동 때에 탄생한 100년이 넘은 미국 교단)에 속해 있는 교단입니다. 아시다시피, 감사한인교회 주일 예배에는 치유를 간구하는 기도 시간이 있고 종종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곤 합니다.
지금도 선교지에서는 수많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치유의 기적, 치유의 은사는 있는데, 방언도 없고, 예언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으로도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지금도 치유의 기적을 경험했다고 보고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넘치도록 많습니다. 흔히, 예언이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논리는 “지금은 성경이 있기 때문에 예언이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의료기술이 하나님의 기적보다 훨씬 많은 병자들을 고치는 첨단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데, 왜 치유의 기적은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요? 흥미롭게도, 치유의 기적은 의료시설이 매우 열악하고,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면, 회복이 어려운 가난한 선교지에서 더 자주 일어납니다. 어쩌면, 오늘날 의료기술이 고도로 발전된 나라에서 치유의 기적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기도하는 자나, 기도를 받는 자나 사실은 하나님 보다 병원과 의사 의료기술 의료보험을 더 마음 깊이 신뢰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하면, 오직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하나님만 바라는 간절함과 온전함의 결핍이 그 원인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의료기술, 의료시술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굳이 기적을 베푸실 이유가 하나님께도 없으신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치유기도를 받기 원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병원예약, 수술예약을 먼저 받고 오십니다. 그래서, 사실상 기도는 수술이 잘 되게 해달라는 기도로 마무리가 됩니다.
예언의 은사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예언, 예언의 은사에 관한 수많은 논란과 논쟁이 존재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예언이 예언답지 않다 진짜 예언 같은 예언, 정확한 예언이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언에 대한 부정적인 현실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성경적인 진실이 있습니다. 그렇게 예언자, 선지자가 많았던 구약시대 때에도 진정한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에 비해 극소수였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선지자 엘리야는 예비 선지 훈련생들을 양육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주에 대부분은 선지자적인 은사가 강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듣고서도 그 예언을 이해하지 못해, 엘리야가 승천하고 난 뒤에 그의 시체를 찾으러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은사를 사모하고 엘리야의 정신을 이어받은 수제자가 있었으니, 바로 엘리사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사실상 진정한 선지자를 한 사람 밖에는 키워내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평신도 또는 사역자 할 것 없이 성령의 은사가 임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부분적으로 기도하다가 신비한 경험을 합니다. 그 가운데는 환상이나 꿈을 경험하기도 하고, 입에서 마치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것처럼, 말씀을 선포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자신에게 예언의 은사가 강하게 임하여, 은사 사역을 해야 한다고 믿어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그냥 다 말해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도 보면,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습니다. 마음이 겸손하지 못한 사람이 이런 일을 경험하면, 자신이 예언한 것이 맞았던 부분에만 자랑스러워 합니다. 틀린 부분에 대해서 생각지 않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틀린 것도 맞다고 믿거나, 합리화합니다. 예를 들어, 몇 해 전에 한반도에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많은 중보기도자들이 기도해서 전쟁을 막은 것이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중보기도로 막을 전쟁이면, 전쟁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전쟁을 대비하라”고 예언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즉, 그 은사 사역자는 예언을 하는 그 순간에는 전쟁이 일어난다고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예언은 틀린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전쟁의 위험성은 전쟁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위험을 놓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사실도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예언을 통해 안다고 말하니, 학식을 갖춘 사람들은 예언을 불신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성으로 판단해도 맞고 틀림이 50대 50 반반이고, 예언도 50대 50 맞을 확률이 반반이니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언에 있어서 희망고문도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예언 중에 두리뭉실한 예언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다른 이를 세우는 케어의 사명이 있다는 둥, 앞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둥, 그런데 다른 이를 사랑으로 케어하는 것은 성령을 받은 크리스천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사명입니다. 어느 특정인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끝 모를 고난 중에 있는 사람에게 계속 “잘 될 거야 괜찮아질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성경적으로 예언은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미래의 일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예언한 일이 그대로 성취되는 예언입니다. 예를 들어, 초대교회 때에 아가보가 전세계에 큰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실제로 기근이 일어났습니다. 즉 이러한 예언은 미래에 일어날 분명한 사실을 말함으로써, 그 일을 대비하고 준비하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 예언을 듣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기근을 준비하여 화를 면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종류의 예언은 미래에 있을 어려움이나 지금의 영적인 현실을 전하거나 하나님의 현재의 그 사람을 향한 뜻을 전달하는 메시지적 예언이 있습니다. 아가보는 함께 예언을 하는 딸들과 더불어 바울을 만났을 때, 사도 바울에게 로마로 올라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로마에 올라가면, 큰 핍박과 환난이 있을 것이니, 피해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사실, 이 무렵 아가보와 그의 딸들만 그러한 예언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외에 다른 많은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똑 같은 예언을 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뜻은 사도 바울을 더 오래 사역하게 하실 계획이 있으셨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사도 바울의 전도 열심과 순교 각오를 말리실 수는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와 함께 간혹 기도 받기 위해 참석했던 기도원이 있었습니다. 기도원 원장님은 장로님이셨는데, 큰 교회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예언과 치유의 은사가 탁월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어떤 권사님에게 몇 날 몇일에 천국가게 될 것이니, 자녀들에게 신앙적인 유언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은 너무 건강한 분이셨고, 그냥 “일찍 천국가면 좋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들은 예언을 알리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 시금치 반찬을 해먹고 싶으셔서, 시장에서 시금치를 사서 집으로 귀가 하시다가 집 앞에서 풀썩 주저 앉으신 채, 그 영혼이 천국으로 떠나가셨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장로님께서 탄식하시며, 이 소식을 교회 성도님들께 전하고 자녀들에게 전하며, 신앙의 유언을 남겼으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온 교인이 천국을 소망하게 되셨을 것인데, 너무나 안타깝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그저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저와 어머니께서 실제로 보고 겪은 사건입니다.
예언은 하나님과 자주 그리고 깊이 교제하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에게 정확하게 임합니다. 마치, 초대교회 때에 많은 제자들이 광야에서 기도한 것처럼, 사도 바울도 아라비아 사막에서 주님과 직접적으로 교통하기 위해 수년을 머물렀던 것처럼, 뿐만 아니라,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 광야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를 받기 위해서 특별한 기도생활을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마음이 순수했고, 하나님만 바라고, 기도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육신의 정욕을 부인하고 오로지 하나님만 찾는 하나님과 시간만 보내는 크리스천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실제로 은사 사역을 하는 분들 중에 하루 몇 시간씩 기도하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사역하시는 분들이 더 세상의 것을 사랑하고,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미디어를 더 좋아하고, 그러한 복잡한 마음이 성령이 주시는 생각인지, 자신의 생각인지 마귀가 주는 생각인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에 은사 사역자들 중에 탁월한 사역을 하신 분들은 대부분 산에서 홀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기도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셀폰으로 유튜브나 자주 시청하는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티비는 말할 것도 없고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며 기도하는 분들이셨습니다. 결국, 오늘날 예언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나지 못하는 이유는 치유의 은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영혼이 수많은 미디어의 영향으로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에, 또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사역 가운데, 자신의 예언을 들은 사람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 때문에 올바른 예언사역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혹여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가운데, 은사 사역을 사모하신다면, 지금 당장 미디어를 끊어야 하고, 마음 속에 음란과 욕심 시기 질투와 같은 습관적인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더 깊이 하나님과 교제해야 하며, 자신에게 임한 예언을 내 생각인지,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마귀가 미혹한 것인지 늘 의심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저는 이 타락하고 악한 시대에 진정한 은사를 경험하기 어려운 때에, 분명한 은사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누군가 치유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분을 앞세워 병원 심방을 다니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언의 은사가 강하게 임하면, 당장 어려움에 처한 분들에게 얼마나 확실한 교훈과 권면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바로 선호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결국 모두 죽습니다. 미래의 일도 미래가 현재가 되는 순간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내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가 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아파서 죽어도 하늘의 영광에 참예할 것이고, 우리의 미래는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는 영원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를 사모하시 되, 말씀을 더욱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