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phrase (선전문구)
혹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아십니까? 아마도 크리스천이라면, 이 말을 설교 또는 기독교 서적, 요즘은 유튜브 크리스천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말은 크리스천들 사이에 성경적인 교훈 또는 신앙의 지혜로써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크리스천들은 이 말이 성경에서 인용한 말이라고 이해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계신 성도님들 중에는 “나 저 말씀 성경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오늘 이 칼럼을 읽는 성도님들께서는 놀랄 준비를 하시고 칼럼을 주의 깊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저도 이 말이 성경에서 나오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왔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수많은 설교자들이 설교 때에 인용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설교자들이 마치 이 말이 마치 성구, 즉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인용한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이 말은 찬양 가사로도 쓰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마커스가 부른 “예수 늘 함께 하시네”라는 찬양입니다. 저도 설교 때에 직접적으로 인용한 적은 없으나, 어려움을 당하신 성도님들을 위로하기 위해, 인내하시라 권면할 때, 이 말을 인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말은 성경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표현 자체가 없습니다. 심지어 “지나가리라”라는 표현조차 없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으시는 어떤 성도님께서는 “설마”하시며, 인터넷 성경 단어 사전이나 구글을 지금 당장 검색하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크게 놀랄 일도 아닙니다. 저도 이 칼럼을 쓰는 지금도 혹시 제가 틀렸을 까봐 다시 인터넷 성경 낱말 사전을 통해 재차 검색해보았으니까요. 아마 구글 검색엔진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혹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타이핑을 하면, 맨 첫 검색결과에 다음과 같은 글이 뜰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오늘은 "다윗왕의 반지 ...Dec 24, 2019 —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은 다윗왕으로부터 "내가 승리를 거두고 너무 기쁠 때에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절망에 빠지고 시련에 처했을 때엔 ...”
한 번 클릭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유대교에서 내려오는 전통과 전설을 담은 미드라쉬 경전에 보면, 다윗과 솔로몬왕에 얽힌 이야기가 한가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내용인 즉, 어느 날 다윗이 자신을 위한 반지를 만들 계획을 세우는데, 반지에 새길 매우 교훈적인 글귀를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학자들에게 자신이 큰 부귀와 영화를 누릴 때에 교만하지 않도록, 동시에 큰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에 절망하지 않도록 교훈하는 격언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격언을 만들기 어려워하던 학자들이 결국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찾아가 물었더니 솔로몬이 고민하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격언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말을 고난과 시련을 겪는 중에 인내를 교훈하는 말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원래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격언입니다. “좋을 때는 그 좋은 것도 결국은 없어지고 떠나가니 절대로 교만하거나 무언가 영원한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말라 그리고 나쁠 때에는 그 또한 세월이 흐르면, 사라지고 잊혀질테니 지나치게 염려하거나 절망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이 말이 매우 교훈적이고 지혜로운 말인 것은 두 극단적인 상황에 다 잘 어울리는 격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격언이 마치 성경 말씀인 것처럼, 인식되기 시작한 이유는 기독교의 배경이 되는 유대교에서 인정하는 미드라쉬라는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라는 사실과, 그 주인공이 다른 사람도 아닌, 다윗과 솔로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설교자들이 이 이야기를 자주 인용했고, 실제로 다윗과 솔로몬이 만든 격언으로 확고히 믿기 시작했으며, 이후 그 이야기를 건너서 들은 다른 설교자들은 그 격언이 다윗과 솔로몬에게 나온 것이니 그들이 쓴 시편과 잠언 전도서의 내용과 다를 바 없다고 믿고, 그 격언의 내용과 흡사한 성경구절을 찾아 설교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대교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예화가 필요한 설교자들을 통해 유명세를 타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남긴 격언이 되고, 그 격언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와전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격언과 같은 의미라며, 인용되는 시편 잠언 전도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격언의 교훈과 지혜와는 사실상 무관한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전도서 3장에는 “때, 시간”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람이 불 때”, “사람이 사랑할 때”와 같이 어떤 일어나는 시기가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어려운 때가 곧 지나가니 인내하라”는 격언의 내용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격언과 함께 자주 인용되는 성경말씀, 시편 103편 15-16절도 격언이 담고 있는 교훈과 전혀 무관한 내용입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이 말씀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유한하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사모해야 한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 그 하나님의 약속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전도서 3장의 결론도 이와 동일합니다. 11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그러니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격언의 본래의 의미와 전혀 상관없이 다르게 해석하여, 성경 말씀과 연결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오는 여러 정보를 통합해서 결론을 내는 ChatGPT 인공지능으로 이 격언을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 문구는 특정한 종교 경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대의 지혜나 격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문구는 시간이 지나면 모든 일이 사라진다는 철학적인 교훈을 전달하며, 삶의 변화무쌍한 본질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다윗의 반지와 관련된 이야기로 언급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이야기는 전통적인 유대교 경전인 미드라쉬(Midrash)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위키피디아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격언과 관해 다음과 같은 사실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유명해진 가장 큰 계기는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1859년 자신의 연설에 사용하면서이다. 링컨은 이때 "동방의 한 왕(an Eastern monarch)"이 현자들에게 명언을 주문한 이야기라고 인용하였다.”
저는 이 격언에 대해 조사하면서, 오히려 더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특히 유튜브에는 “신앙적이다 영적이다”라고 하면서, 사실은 전혀 성경 말씀도 성경적이지도 않은, 오히려 성경 말씀을 오해하게 만드는 기독교를 가장한 catchphrase 선전문구들이 즐비합니다. 설교자들도 듣기 좋은 말, 감동적인 말이라면, 성경과 다소 반대되거나, 큰 연관성이 없어도 인용하거나, 본인이 직접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사랑은 unconditional love무조건,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언뜻 들어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설명한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믿어야 구원받는다”, “내 뜻을 따를지 결정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무조건적이라는 표현을 어떤 의미로 사용한 것인지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사실 ‘무조건’, 즉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말은 “믿던 안 믿던, 죄를 지었던, 짓지 않았던”이라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맞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은 “사랑의 하나님이 왜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이 창조한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느냐? 그런 신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조건적’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사랑을 영광스럽게 하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오해하게 할 소지가 있는 표현인 것입니다.
사실, “고난과 역경을 바라보며, 곧 지나가겠지 인내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는 인내하는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희망고문을 주는 자기최면 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고난의 때가 곧 하나님을 바라볼 때이며, “이 또한 하나님이 도우시고 일하시리라”고 믿는 “담대한 믿음을 붙들 때”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결코 철학적이거나 현학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하나님의 의한, 하나님을 위한 진리를 straightforward 단순하고 솔직하고 명료하게 전할 뿐입니다.
믿는 자는 캐치프레이징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마음에 위로를 주고, 추억을 떠올려 설레게 하는 감상적인 문구,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이 고민해 온 인생관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 철학적인 문구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미혹을 당하기 쉽습니다. 절반은 성경적 혹은 영적이고 절반은 현학적이고 철학적이고 감성적인 말에 감동하고 감격합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러다가 결국, 세상 풍조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말씀을 떠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지나가 버릴”, 즉 “기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고 없어져버릴” 듣기 좋은 캐치프레이즈를 붙드는 자들이 아니라, 영원무궁한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Catchphrase (선전문구)
혹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아십니까? 아마도 크리스천이라면, 이 말을 설교 또는 기독교 서적, 요즘은 유튜브 크리스천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말은 크리스천들 사이에 성경적인 교훈 또는 신앙의 지혜로써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크리스천들은 이 말이 성경에서 인용한 말이라고 이해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계신 성도님들 중에는 “나 저 말씀 성경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오늘 이 칼럼을 읽는 성도님들께서는 놀랄 준비를 하시고 칼럼을 주의 깊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저도 이 말이 성경에서 나오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왔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수많은 설교자들이 설교 때에 인용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설교자들이 마치 이 말이 마치 성구, 즉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인용한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이 말은 찬양 가사로도 쓰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마커스가 부른 “예수 늘 함께 하시네”라는 찬양입니다. 저도 설교 때에 직접적으로 인용한 적은 없으나, 어려움을 당하신 성도님들을 위로하기 위해, 인내하시라 권면할 때, 이 말을 인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말은 성경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표현 자체가 없습니다. 심지어 “지나가리라”라는 표현조차 없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으시는 어떤 성도님께서는 “설마”하시며, 인터넷 성경 단어 사전이나 구글을 지금 당장 검색하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크게 놀랄 일도 아닙니다. 저도 이 칼럼을 쓰는 지금도 혹시 제가 틀렸을 까봐 다시 인터넷 성경 낱말 사전을 통해 재차 검색해보았으니까요. 아마 구글 검색엔진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혹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타이핑을 하면, 맨 첫 검색결과에 다음과 같은 글이 뜰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오늘은 "다윗왕의 반지 ...Dec 24, 2019 —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은 다윗왕으로부터 "내가 승리를 거두고 너무 기쁠 때에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절망에 빠지고 시련에 처했을 때엔 ...”
한 번 클릭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유대교에서 내려오는 전통과 전설을 담은 미드라쉬 경전에 보면, 다윗과 솔로몬왕에 얽힌 이야기가 한가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내용인 즉, 어느 날 다윗이 자신을 위한 반지를 만들 계획을 세우는데, 반지에 새길 매우 교훈적인 글귀를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학자들에게 자신이 큰 부귀와 영화를 누릴 때에 교만하지 않도록, 동시에 큰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에 절망하지 않도록 교훈하는 격언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격언을 만들기 어려워하던 학자들이 결국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찾아가 물었더니 솔로몬이 고민하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격언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말을 고난과 시련을 겪는 중에 인내를 교훈하는 말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원래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격언입니다. “좋을 때는 그 좋은 것도 결국은 없어지고 떠나가니 절대로 교만하거나 무언가 영원한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말라 그리고 나쁠 때에는 그 또한 세월이 흐르면, 사라지고 잊혀질테니 지나치게 염려하거나 절망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이 말이 매우 교훈적이고 지혜로운 말인 것은 두 극단적인 상황에 다 잘 어울리는 격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격언이 마치 성경 말씀인 것처럼, 인식되기 시작한 이유는 기독교의 배경이 되는 유대교에서 인정하는 미드라쉬라는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라는 사실과, 그 주인공이 다른 사람도 아닌, 다윗과 솔로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설교자들이 이 이야기를 자주 인용했고, 실제로 다윗과 솔로몬이 만든 격언으로 확고히 믿기 시작했으며, 이후 그 이야기를 건너서 들은 다른 설교자들은 그 격언이 다윗과 솔로몬에게 나온 것이니 그들이 쓴 시편과 잠언 전도서의 내용과 다를 바 없다고 믿고, 그 격언의 내용과 흡사한 성경구절을 찾아 설교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대교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예화가 필요한 설교자들을 통해 유명세를 타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남긴 격언이 되고, 그 격언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와전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격언과 같은 의미라며, 인용되는 시편 잠언 전도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격언의 교훈과 지혜와는 사실상 무관한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전도서 3장에는 “때, 시간”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람이 불 때”, “사람이 사랑할 때”와 같이 어떤 일어나는 시기가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어려운 때가 곧 지나가니 인내하라”는 격언의 내용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격언과 함께 자주 인용되는 성경말씀, 시편 103편 15-16절도 격언이 담고 있는 교훈과 전혀 무관한 내용입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이 말씀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유한하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사모해야 한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 그 하나님의 약속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전도서 3장의 결론도 이와 동일합니다. 11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그러니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격언의 본래의 의미와 전혀 상관없이 다르게 해석하여, 성경 말씀과 연결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오는 여러 정보를 통합해서 결론을 내는 ChatGPT 인공지능으로 이 격언을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 문구는 특정한 종교 경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대의 지혜나 격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문구는 시간이 지나면 모든 일이 사라진다는 철학적인 교훈을 전달하며, 삶의 변화무쌍한 본질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다윗의 반지와 관련된 이야기로 언급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이야기는 전통적인 유대교 경전인 미드라쉬(Midrash)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위키피디아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격언과 관해 다음과 같은 사실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유명해진 가장 큰 계기는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1859년 자신의 연설에 사용하면서이다. 링컨은 이때 "동방의 한 왕(an Eastern monarch)"이 현자들에게 명언을 주문한 이야기라고 인용하였다.”
저는 이 격언에 대해 조사하면서, 오히려 더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특히 유튜브에는 “신앙적이다 영적이다”라고 하면서, 사실은 전혀 성경 말씀도 성경적이지도 않은, 오히려 성경 말씀을 오해하게 만드는 기독교를 가장한 catchphrase 선전문구들이 즐비합니다. 설교자들도 듣기 좋은 말, 감동적인 말이라면, 성경과 다소 반대되거나, 큰 연관성이 없어도 인용하거나, 본인이 직접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사랑은 unconditional love무조건,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언뜻 들어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설명한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믿어야 구원받는다”, “내 뜻을 따를지 결정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무조건적이라는 표현을 어떤 의미로 사용한 것인지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사실 ‘무조건’, 즉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말은 “믿던 안 믿던, 죄를 지었던, 짓지 않았던”이라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맞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은 “사랑의 하나님이 왜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이 창조한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느냐? 그런 신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조건적’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사랑을 영광스럽게 하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오해하게 할 소지가 있는 표현인 것입니다.
사실, “고난과 역경을 바라보며, 곧 지나가겠지 인내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는 인내하는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희망고문을 주는 자기최면 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고난의 때가 곧 하나님을 바라볼 때이며, “이 또한 하나님이 도우시고 일하시리라”고 믿는 “담대한 믿음을 붙들 때”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결코 철학적이거나 현학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하나님의 의한, 하나님을 위한 진리를 straightforward 단순하고 솔직하고 명료하게 전할 뿐입니다.
믿는 자는 캐치프레이징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마음에 위로를 주고, 추억을 떠올려 설레게 하는 감상적인 문구,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이 고민해 온 인생관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 철학적인 문구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미혹을 당하기 쉽습니다. 절반은 성경적 혹은 영적이고 절반은 현학적이고 철학적이고 감성적인 말에 감동하고 감격합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러다가 결국, 세상 풍조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말씀을 떠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지나가 버릴”, 즉 “기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고 없어져버릴” 듣기 좋은 캐치프레이즈를 붙드는 자들이 아니라, 영원무궁한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