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긍휼의 신비(3)

긍휼의 신비 (3)


다른 이를 긍휼히 여기고 자비를 베푸는 사랑에 있어서, 사람은 그러한 사랑을 학습해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긍휼이 여길 줄 알고, 자비를 베풀 줄 안다는 것은 부모님을 포함해서 주변에서 그런 모범을 보여준 어떤 존재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경험한 자들은 긍휼히 여길 수밖에 없고, 자비를 베풀 수 밖에 무언가가 그 내면에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긍휼히 여길 줄 모르거나, 자비를 베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가 아직 크신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마음을 방해하는 무언가로 인해 긍휼의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무관심이라는 방해꾼이 있습니다. 현대인의 바쁜 삶은 주변의 아픔을 돌아볼 여유를 앗아갑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냥 지나쳤던 이유도 직무와 바쁜 일정 때문이었습니다. 


두번째로 판단하는 마음도 방해의 한 요소입니다. "저 사람은 자기가 잘못해서 저렇게 된 거야"라는 판단이 서는 순간 긍휼은 사라집니다. 흔히, 홈리스 분들을 돕고 싶어 하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데,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니., 저렇게 사는 것이고, 결국 집 없이 떠돌아 다니는 것은 당사자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한 때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통해 가르쳐 주신 긍휼과 자비를 외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긍휼은 판단하고 나서 하는 류의 것이 아니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안타까이 여기는 선한 마음입니다. 긍휼은 판단하지 않습니다.


세번째로 교만과 우월감도 긍휼과 자비의 큰 방해물일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우월감은 긍휼을 아주 저급한 수준의 '동정'으로 변질시킵니다. 긍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과 같은데, 마음이 높아져 있으면 타인의 고통이 내 발밑의 일처럼 느껴져 진심으로 공감하기 어려워집니다.


네 번째로 상처로 인해 마음이 굳어진 상태도 자비와 긍휼의 방해물일 수 있습니다. 과거에 사람에게 속았거나 배신당한 경험이 있으면, 긍휼히 여길 순간마다 방어기제가 작동합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의 벽을 쌓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도와줘 봐야 아무 소용없어"라는 냉소적 생각이 긍휼의 마음을 싹트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번 째, 이기심으로 인한 계산적인 생각도 긍휼과 자비를 방해합니다.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는 내 시간, 감정, 에너지를 나누어야 합니다. "내가 이걸 하면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지?" 혹은 "내 손해가 너무 큰데?"라는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하면 긍휼의 순수함은 금세 사라집니다.


믿는 자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신앙의 시금석으로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내 안에 긍휼의 마음이 없다” 느껴진다면, “내 안에 은혜가 없구나”라고 자신의 신앙을 정확히 진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자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저축하고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하나님 마음 달라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관계가 달라집니다. 교회생활도 달라지고, 가정도 달라집니다. 싫은 것이 예뻐 보이고, 미운 것이 좋아 보이게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변의 사람과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이 변하는 것입니다. 내 속이 변하여 주변이 달라 보이는 역사가 바로 긍휼의 신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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