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

07 Apr 화합

리버사이드카운티에 위치한 어떤 공원에 세 인물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맨 앞에는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루터 킹 목사의 동상이, 그 다음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 이어서 간디의 동상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인으로써,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마틴루터 킹 목사님과 간디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존경받는다는 사실이 뿌듯한 일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안창호 선생이 다른 두 분과 견줄만한 분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철이 들면서, 나라를 빼앗긴 한을 풀고, 그 책임을 담당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우선 스스로가 힘을 길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당장 발붙일 곳이 없어서, 근처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당시 농장주가 너무나 성실하게 일하는 도산의 모습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도산을 알고 지낸 사람들이 그 성실한 사람이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인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재미 한국인들의 협력을 얻어 동상이 세워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대한민국의 독립에 이바지한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라면, 김구 선생이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떠올립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당시 임시정부의 대표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독립을 위해 애쓴 지도자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보고에 의하면, 실제로는 “도산 이야말로 임시정부의 탁월한 지도자였다”라고 평가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도산은 당시 임시정부가 의견대립 분열되면, 어떻게든 설득하여 다시 합치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과 저쪽이 편 가르기를 할 때면, 어떻게든 둘 사이에 서서 중재하고 화해를 이끌어 냈다고 합니다. 좌우가 극심하게 대립되어 있을 때에도 “독립을 이룰 때까지는 힘을 합치라”고 간절히 타이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도산일기를 읽어보면, “오늘은 누구를 찾아가 화해하기를 설득했다”든지, “누구와 누구의 싸움을 사전에 막기 위해 그들을 미리 만나려고 찾아다녔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크리스천으로써의 모범을 보여주신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세상에서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교회 안에서 제시되는 의견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거의 모두가 나름의 일리가 있고, 교회를 위하여 내놓은 좋은 의견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의견들이 대립하고 충돌을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정답은 무엇일까요? 더 옳고 현명하고 더 큰 유익을 주는 의견을 선택하는 일일까요? 아닙니다. 화평할 수만 있다면, 하나 될 수만 있다면, 더 옳은 의견도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이 정답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하나 됨을 힘써 지키는 일입니다. 늘 화합하십시오. 화평하십시오. 하나 되기에 힘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