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인들 사이에서 ‘선을 넘는다’는 표현을 마치 관용구처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에도 **“cross the line”**이라는 일상적인 표현이 있는데, 어쩌면 영어를 아는 누군가가 이 표현을 직역한 것이 방송을 타면서 널리 유행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을 넘는다는 것은 언행이 도를 넘어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와 농담을 주고받을 때 가정이나 가족을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선을 넘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는 ‘선을 넘는다’는 표현과 더불어 “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니지”라는 말도 유행하곤 했습니다.
모든 관계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관계일수록, 또는 가까워져 가는 관계일수록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반응하는 성향이 다를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도 반응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상황을 센스 있게 잘 파악하는 것이며,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행을 갖추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의 믿음의 형제자매는 하나님을 믿는 같은 믿음과 성령께서 허락하신 친밀감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가족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켜야 할 선이 불분명해질 때가 많습니다. “믿음의 형제자매라면 이해하고 덮어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선을 넘은 것을 선 넘었다고 말하지 못할 수도 있고, 상대방이 이해해 줄 것이라는 신뢰 때문에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모일 때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더욱 깍듯하고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반말을 하거나 친한 친구처럼, 혹은 언니·동생, 형·동생으로 불러서는 안 됩니다. 직분을 붙여 부르고, 존댓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을 넘어야 하거나, 선을 넘는 것을 허용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거나 들을 때, 혹은 복음을 전하거나 복음을 전해 받을 때입니다. 최근에 원로목사님을 찾아 뵙고 함께 식사하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목사님께서는 일본 선교를 위해 일본어를 배우시고, 일본 목회자들의 고충을 깊이 고민하며 세미나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는 일본 목회자들이 서로를 지나치게 깍듯이 존중하는 문화 때문에 전해야 할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릴까 염려하여 전도하지 못하는 모습을 깨우치기 위해 ‘선을 넘다’라는 주제로 요한복음 말씀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주님께서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사실 주님께서 여인에게 건네신 말씀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말씀이었습니다. 여러 번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에게 사실상 “너는 다섯 남편에게 버림받았고, 지금은 남편도 아닌 사람과 함께 살고 있구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결국 여인의 마음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여인이 주님을 영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선을 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선 넘는 것을 무조건 허용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관계에는 상처만 남습니다. 그러나 선을 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전도할 때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입니다. 또한 우리는 선을 넘는 것을 마땅히 용납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조차 자신의 선에만 민감한 사람은 순종할 줄 모르는 사람이거나, 말씀 이면에 서 계신 하나님의 권위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상대방에게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예의를 요구하는 개인 중심의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상대를 배려하여 선을 넘지 않는 건강한 사회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선을 지킬 줄도 알고, 또한 넘어야 할 때에는 담대히 넘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선 넘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인들 사이에서 ‘선을 넘는다’는 표현을 마치 관용구처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에도 **“cross the line”**이라는 일상적인 표현이 있는데, 어쩌면 영어를 아는 누군가가 이 표현을 직역한 것이 방송을 타면서 널리 유행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을 넘는다는 것은 언행이 도를 넘어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와 농담을 주고받을 때 가정이나 가족을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선을 넘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는 ‘선을 넘는다’는 표현과 더불어 “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니지”라는 말도 유행하곤 했습니다.
모든 관계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관계일수록, 또는 가까워져 가는 관계일수록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반응하는 성향이 다를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도 반응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상황을 센스 있게 잘 파악하는 것이며,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행을 갖추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의 믿음의 형제자매는 하나님을 믿는 같은 믿음과 성령께서 허락하신 친밀감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가족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켜야 할 선이 불분명해질 때가 많습니다. “믿음의 형제자매라면 이해하고 덮어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선을 넘은 것을 선 넘었다고 말하지 못할 수도 있고, 상대방이 이해해 줄 것이라는 신뢰 때문에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모일 때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더욱 깍듯하고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반말을 하거나 친한 친구처럼, 혹은 언니·동생, 형·동생으로 불러서는 안 됩니다. 직분을 붙여 부르고, 존댓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을 넘어야 하거나, 선을 넘는 것을 허용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거나 들을 때, 혹은 복음을 전하거나 복음을 전해 받을 때입니다. 최근에 원로목사님을 찾아 뵙고 함께 식사하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목사님께서는 일본 선교를 위해 일본어를 배우시고, 일본 목회자들의 고충을 깊이 고민하며 세미나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는 일본 목회자들이 서로를 지나치게 깍듯이 존중하는 문화 때문에 전해야 할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릴까 염려하여 전도하지 못하는 모습을 깨우치기 위해 ‘선을 넘다’라는 주제로 요한복음 말씀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주님께서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사실 주님께서 여인에게 건네신 말씀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말씀이었습니다. 여러 번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에게 사실상 “너는 다섯 남편에게 버림받았고, 지금은 남편도 아닌 사람과 함께 살고 있구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결국 여인의 마음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여인이 주님을 영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선을 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선 넘는 것을 무조건 허용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관계에는 상처만 남습니다. 그러나 선을 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전도할 때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입니다. 또한 우리는 선을 넘는 것을 마땅히 용납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조차 자신의 선에만 민감한 사람은 순종할 줄 모르는 사람이거나, 말씀 이면에 서 계신 하나님의 권위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상대방에게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예의를 요구하는 개인 중심의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상대를 배려하여 선을 넘지 않는 건강한 사회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선을 지킬 줄도 알고, 또한 넘어야 할 때에는 담대히 넘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